MoMA에서 만난 프리다와 디에고, Frida and Diego: The Last Dream, Met Opera 공연에 대한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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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A 멤버십의 혜택 중 하나는 주요 전시의 일반 공개 전에 먼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 Frida and Diego: The Last Dream의 멤버십 프리뷰는 3월 18일부터 20일까지였고, 나는 운이 좋게도 그 날, 그 곳에 있어 먼저 전시를 관람할 수 있었다.  

전시 정보 전시명: Frida and Diego: The Last Dream
기간: 2026년 3월 21일 – 9월 12일
위치: MoMA, Floor 3, 3 North (11 W 53rd St, New York)
연계 오페라: El Último Sueño de Frida y Diego (Met Opera, 5월 14일 – 6월 5일)
멤버십 프리뷰: 3월 18–20일 (종료)

두 사람은 1928년부터 Frida가 세상을 떠난 1954년까지 연인이었다. Diego Rivera 는 멕시코 혁명 이후 멕시코의 문화와 정체성을 재정의하는 운동의 핵심에 있었고, Frida Kahlo는 내밀한 자화상으로 같은 시대를 살았다. 

이 전시는 그 두 사람의 예술이 오페라라는 형식과 만나는 첫 시도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신작 El Último Sueño de Frida y Diego (Frida and Diego : The Last Dream)와 연계된 기획으로, 오페라의 무대 세트 디자이너 Jon Bausor가 전시 공간 전체를 설계했다. 오페라 무대가 그대로 갤러리 안으로 들어온 셈이다.

오페라의 서사는 이렇다 — Frida Kahlo가 세상을 떠난 지 3년 후, 늙은 Diego Rivera가 죽은 자의 날(Día de Muertos)에 그녀를 다시 불러낸다. 다시 살아있는 세계로, 그림으로 돌아오도록 설득하는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가 어떤 느낌의 오페라로 만들어졌을지, 오페라에는 관심이 없던 나도 궁금해지는 전시이다.

그녀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다

Frida Kahlo (1907–1954)는 멕시코시티 근교 코요아칸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에 소아마비를 앓았고, 열여덟 살이던 1925년에는 버스 사고로 척추, 골반, 다리 등 전신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서른다섯 번 이상의 수술을 받았고, 평생 극심한 통증과 함께 살았다. 오랜 회복 기간 동안 침대에 누워 천장에 거울을 달고 자신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자화상의 시작이었다.

Diego Rivera와는 1928년에 만나 이듬해 결혼했다. 두 번 결혼하고 두 번 이혼한 관계였다 — Rivera의 잦은 외도, 프리다의 유산, 신체적 고통이 뒤엉킨 삶.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의 예술을 깊이 지지했고, Rivera가 죽은 자의 날에 프리다를 다시 불러낸다는 이번 오페라의 서사는 그 관계의 복잡함을 그대로 담고 있다.

전시는 어두운 커튼으로 만들어진 동굴같은 입구로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일반적인 MoMA 전시와는 달리 공간 자체가 극적으로 연출되어 있었다. 

Frida의 자화상들 - 고통을 그린 사람

전시에는 Frida Kahlo의 그림 여섯 점과 드로잉 한 점이 포함되어 있었다. 작품 수가 많지 않아서 오히려 하나하나 앞에 오래 머물 수 있었다. 

프리다는 평생 55점의 자화상을 그렸다. 전체 작품의 3분의 1이 넘는다.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 “나 자신을 그리는 건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침대에 누워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피사체가 자기 자신이었고, 고통과 정체성, 멕시코인으로서의 자부심, 여성으로서의 몸을 그대로 그림 속에 담았다.

그녀의 작품은 아름답거나 기술적으로 뛰어난 그림이라기보다는, 굉장히 직관적인 그림이다. 피로 이어진 가족관계도, 미국과 멕시코 국경선 사이에 선 자화상 — 설명 없이도 무엇을 말하는지 바로 전해진다.

그녀의 스토리와 그림은 실존 인물인 ‘본인의 고통의 무게’를 말한다. 그녀의 그림을 보면 그녀의 고통이 그대로 느껴지는데 (물론, 10분의 1도 제대로 공감하지는 못할테지만), 타인의 고통이 예술이 된다는 것이 슬프면서도, 그녀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 시킨 멋짐도 동시에 느껴진다.   

Frida Kahlo Self-Portrait with Cropped Hair
Frida Kahlo. Fulang-Chang and I
Self-portrait on the border between Mexico and the United States
My Grandparents, My Parents, and I
Tree of Hope, Remain Strong
The Wounded Deer

전시 영상

전시 한가운데 천장까지 뻗은 붉은 나무 설치 작품이 있다. 나무 아래에는 파란 침대가 놓여있고, 위에는 침대에 누워 자신의 전신을 볼 수 있는 거대한 거울이 붙어있다. 실제로 Frida가 전신마비로 누워 자화상을 그렸던 그 침대에서 모티브 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계속해서 뻗어나는 붉은 나무의 뿌리와 가지가 그녀가 홀로 있던 침대와 그 방안을 집어 삼킬 듯 하다.  

전시 분위기를 영상으로 담았다.(Insta360 Go Ultra)

Diego Rivera의 작품들

Diego Rivera (1886–1957)는 멕시코를 대표하는 벽화가다. 1920년대 멕시코 혁명 이후 정부의 지원 아래 공공 건물 벽에 멕시코의 역사와 민중의 삶을 거대한 벽화로 그렸다. 문맹률이 높던 시대에 벽화는 가장 강력한 시각적 언어였다. 멕시코시티 국립궁전, 디트로이트 미술관, 뉴욕 록펠러 센터 — 그의 벽화는 대륙을 넘었다. 록펠러 센터 벽화는 레닌의 얼굴을 그렸다는 이유로 완공 직전 파괴되기도 했다.

프리다보다 스무 살 연상이었고, 두 번 결혼하고 두 번 이혼했다. 수많은 외도로 프리다에게 깊은 상처를 줬지만 — 프리다가 세상을 떠난 후 Rivera는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부분을 잃었다”고 했다. 그리고 3년 후 죽었다.

Diego Rivera, Flower Festival
Agrarian Leader Zapata, 1931
Agrarian Leader Zapata (1931)는 멕시코 혁명의 핵심 인물 에밀리아노 사파타가 농민 반군을 이끄는 장면이다. 흰 말의 고삐를 쥔 사파타 발아래 지주 계급의 시신이 누워있다. 당시 멕시코와 미국 언론은 사파타를 배신자 무법자로 매도했는데 — 리베라는 그를 민중의 영웅으로 그렸다. 실제 사파타는 화려한 카우보이 복장으로 자신을 표현했지만, 리베라는 일부러 소박한 농민 옷을 입혔다. 권력의 상징을 걷어내고 진정한 민중의 편으로 표현한 거다. 이 그림은 1931년 MoMA 개인전을 위해 리베라가 직접 뉴욕에 와서 6주 만에 완성한 이동 가능한 프레스코 작품이다.

그리고 그의 작품 앞에는 그들의 자국인 멕시코를 대표하듯 빨간색의 파라미드 모형이 놓여있다. 사람들은 이 곳에 앉아 그들의 작품을 감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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