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MA 3층, Wifredo Lam 회고전, “When I Don’t Sleep, I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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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A 3층 에스컬레이터 바로 앞, 청록색 벽에 흰 글씨로 크게 쓰인 문장 앞에 멈췄다.

When I Don’t Sleep, I Dream. 잠들지 않을 때, 나는 꿈을 꾼다. 무슨 전시인지 몰랐는데 그 문장에 이끌려 들어갔다. Wifredo Lam(위프레도 람) —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전시 정보 전시명: Wifredo Lam: When I Don't Sleep, I Dream
미국 최초 Wifredo Lam 대규모 회고전
장소: MoMA, New York
작가: Wifredo Lam (Cuban, 1902–1982)
대표 소장작: La jungla (The Jungle), 1942–43 — MoMA 소장, Inter-American Fund

Wifredo Lam — 망명과 귀환, 그리고 정글

Wifredo Lam (1902–1982)은 쿠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중국계, 어머니는 아프리카-쿠바계였다. 1923년 마드리드로 건너가 스페인 왕립미술학교에서 그림을 공부했다. 학문적 회화 기법을 익히면서도 평평한 공간과 기하학적 형태 같은 현대적 언어를 실험했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터지자 공화군에 합류해 마드리드를 지켰다. 나중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스페인은 내게 그림의 힘과 구조를 가르쳐줬다.”

1938년 파리로 건너간 람은 피카소를 만났고, 초현실주의 시인 앙드레 브르통과도 가까워졌다. 1940년 나치의 프랑스 침공으로 또다시 망명길에 올랐다. 마르세유에서 머무는 동안 초현실주의 작가들과 함께 자동기술법과 집단 드로잉을 실험했고, 인간·식물·동물이 뒤섞인 혼성 형상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1941년 고향 쿠바로 돌아간 람은 18년 만에 마주한 현실 — 신식민지적 인종 차별과 경제적 불평등 — 에 충격을 받았다. 그 경험이 그의 작품 세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I knew I was running the risk of not being understood either by the man in the street or by the others. But a true picture has the power to set the imagination to work, even if it takes time." "거리의 사람에게도, 다른 이들에게도 이해받지 못할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진정한 그림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상상력을 작동시키는 힘이 있다." — Wifredo Lam, 전시 벽면 텍스트에서

피카소의 영향이 보이는 작품들

처음 갤러리에 들어섰을 때 피카소 같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납작하게 처리된 얼굴, 아프리카 마스크를 닮은 이목구비, 해체된 형태들 — 피카소가 아프리카 조각에서 영향을 받았던 것처럼, 람도 같은 원천에서 출발했다. 둘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건 그래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La jungla / The Jungle, 1942–43

람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두 장의 큰 크라프트지를 붙여 만든 화면 위에 먼저 목탄으로 구성을 스케치하고, 그 위에 묽게 희석한 유채를 여러 겹 덧발랐다. 정글을 가득 채운 인물들은 아프리카 마스크 같은 얼굴, 손 모양의 발, 길게 늘어난 다리를 가졌다. 남성과 여성의 속성을 동시에 지닌 이 형상들 사이로 넓은 잎사귀, 열대 과일, 사탕수수가 뒤엉켜 있다.

쿠바의 사탕수수밭은 노예제와 착취의 역사를 담은 공간이다. 람은 그 공간에 아프로-카리브 문화의 생명력과 저항을 함께 심어놓았다. 그는 자신의 예술이 “탈식민화의 행위”라고 직접 말했다.

La Guerra Civil, 1937 - 스페인 내전

스페인 내전(1936–1939)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공화국 정부에 맞서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시작됐다. 독일 나치와 이탈리아 파시스트가 프랑코를 지원했고, 전 세계에서 자원병들이 공화파를 돕기 위해 스페인으로 모여들었다. 람도 그중 하나였다. 1939년 프랑코가 승리하면서 스페인은 1975년까지 독재 체제가 됐다. 

스페인 내전 당시 람이 공화군에 합류해 독가스 중독으로 병원에 실려간 뒤 그린 그림이다. 전쟁의 혼돈과 폭력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전시 설명에 따르면, 이 작품이 람을 정치적으로 헌신하는 현대 화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고 한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독일군의 스페인 지역 학살을 그렸다)와 같은 해에 그려진 그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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