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혼자 MoMA를 찾았을 때는 피카소 작품만 보고 지나쳤고, 사실 마르크 샤갈이라는 화가도 잘 알지 못했다. 이번에는 직장 동료들과 함께 둘러보며 〈나와 마을〉이 MoMA 5층에서 꼭 봐야 할 작품 중 하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덕분에 그냥 지나칠 뻔했던 작품 앞에 멈춰 자세히 보게 되었다.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
마르크 샤갈은 유대계 러시아·프랑스 화가다. 당시 러시아 제국에 속해 있던 비테프스크, 현재의 벨라루스에서 태어나 러시아에서 미술을 공부한 뒤 파리로 건너갔다. 파리에서 입체주의와 야수주의 같은 새로운 미술 흐름을 접했지만, 동유럽의 민속적인 이미지와 유대인 문화, 고향의 기억을 결합해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었다.
그의 그림에는 떠 있는 인물, 동물, 연인, 결혼식, 마을과 성서 속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회화뿐 아니라 판화, 무대미술, 도자기와 스테인드글라스 등 여러 분야에서도 작품을 남겼다. 〈나와 마을〉은 샤갈의 초기 작품이면서, 그의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고향과 기억의 이미지가 잘 드러나는 그림이다.
Gallery 503 A Cubist Salon
〈나와 마을〉은 MoMA 5층 Gallery 503의 A Cubist Salon에 전시되어 있다. 입체주의(Cubist)는 사물이나 사람을 한 방향에서 본 모습 그대로 그리기보다, 여러 각도에서 본 모습을 한 화면 안에 동시에 보여주려는 미술 방식이다. 그래서 얼굴이 정면과 옆모습이 겹쳐 보이거나, 집과 인물이 삼각형과 사각형 같은 기하학적 형태로 나뉘어 보이기도 한다.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가 대표적인 작가다.
샤갈은 전형적인 입체주의 화가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파리에서 입체주의를 접했고 그 영향을 받았다. 〈나와 마을〉에서도 사람과 동물, 마을이 현실적인 원근법에 맞게 배치되지 않고, 원과 삼각형, 사선으로 화면이 나뉘어 있다. 이런 점에서 입체주의의 영향을 볼 수 있어 이 공간에 함께 소개되고 있다.
나와 마을 (I and the Village, 1911)

이 작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화면 중앙의 초록색 얼굴과 커다란 동물의 얼굴이다. 두 존재는 서로 마주 보고 있고, 눈과 눈 사이에는 가느다란 선이 이어져 있다. 농촌 마을에서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며 서로 의존했던 관계를 보여주는 장치처럼 읽힌다.
동물의 얼굴 안쪽을 자세히 보면 작은 장면이 하나 더 있다. 사람이 소의 젖을 짜는 모습이다. 커다란 얼굴 안에 또 다른 일상을 넣어, 두 존재가 단순히 마주 보는 사이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밀접하게 이어져 있었음을 드러낸다.
화면 위쪽에는 작은 집과 교회처럼 보이는 건물, 거꾸로 선 인물이 등장한다. 집의 방향과 인물의 자세는 실제 풍경과 맞지 않는다. 마을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겼다기보다, 고향을 떠올릴 때 따라오는 여러 기억을 자유롭게 겹쳐 놓은 것 같다.
아래쪽의 꽃이 달린 나무와 원, 삼각형, 사선 같은 형태도 눈에 띈다. 초록, 빨강, 파랑의 강한 색과 기하학적인 구성에서는 샤갈이 파리에서 접한 입체주의의 영향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는 형태를 분해하는 데만 머물지 않았다. 그 구성 안에 고향의 기억과 사람과 동물의 관계를 담아, 동화적이고 비현실적인 분위기로 풀어냈다.
처음에는 사람과 동물, 집과 나무가 한 화면 안에 한꺼번에 들어 있어 조금 복잡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샤갈은 떠나온 고향을 정확한 모습으로 그리기보다, 고향을 떠올릴 때 함께 따라오는 사람과 동물, 일상과 감정을 한 화면 안에 꿈처럼 겹쳐 놓은 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