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살 딸과 단둘이 본 위키드 뮤지컬 Wicked, 뉴욕 브로드웨이 로터리 $55 티켓 후기

브로드웨이 로터리 표

요즘 매일 꾸준히 하고 있는 게 있다. Broadway Direct Lottery.

공연 하루 전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응모할 수 있고, 오후 3시가 지나면 바로 당첨 여부가 메일로 온다. 몇 번을 해도 안 되다가, 남편 이름과 이메일로 응모한 게 걸렸다. 내 이름으로 한 건 이번에도 꽝.

완전 당첨은 아니고 스탠바이였다. 이미 당첨된 사람이 결제하지 않으면 그 자리가 나에게 넘어온다. 이 로터리는 무료가 아니라, 당첨되면 인당 알라딘·라이언킹은 각 $35, 위키드는 $55을 내야 한다. 위키드 스탠바이로 걸려 있다가 한 시간쯤 지나 결제 가능한 링크가 왔고, 바로 결제했다.

응모 시 티켓은 최대 2장. 원래는 뮤지컬을 좋아하는 남편과 딸이 갈 계획이었는데, 주중이라 남편이 7시까지 맨해튼에 도착하기엔 빠듯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딸의 썸머캠프를 마치자마자 픽업해서 바로 버스를 타고 맨해튼에 가기로 했다.

매표소에서 당일 픽업을 하려면 ID가 필요하지만, 공연 당일 오전 10시 반쯤 QR코드 티켓이 메일로 도착해서 그것만 가지고 가면 됐다.

뮤지컬 극장 가는 길과 음식물 반입

집 앞에서 서는 익스프레스 버스 막차가 4시 40분이었는데, 그걸 타면 시간이 딱 맞았다. 막히는 링컨 터널을 겨우 빠져나오면 고층 빌딩과 양보 없이 울리는 경적, 멈추지 않고 걷는 사람들의 복잡한 맨해튼이 나타난다.

Joe’s Pizza에 들렀다 가려 했지만, 42가에 내려서 걷는 시간에 다섯 살 아이 보폭까지 더하면 더 오래 걸릴 것 같아서 극장 근처에서 대충 먹기로 했다. 42가에서 51가까지 걸어 연두색 간판의 공연장을 발견하고 안심했지만, 주변에 보이는 건 타코벨밖에 없어 거기서 퀘사디야와 칩을 주문했다.

공연장은 음식물 반입이 금지돼 있어서, 줄 서기 전에 퀘사디야를 한 조각씩 먹었다. 칩은 너무 짜서 다 버렸고. 그래도 집에서 싸 온 땅콩+초콜릿, 포도, 과자 두 봉지는 가방 검사를 하지 않아 그대로 들고 들어갈 수 있었다.

뮤지컬 굿즈 컵

평소라면 극장 음료는 상업적이라며 사 먹지 않았을 텐데, 아이에게 좋은 첫 뮤지컬 기억을 남겨주고 싶어서 매점에서 주스를 하나 샀다. 한 컵에 $10. 오렌지와 크랜베리 중 크랜베리를 골랐고, 위키드 굿즈 컵에 담아준다.

나는 컵 자체엔 큰 감흥이 없었고 돈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데이트로 본 뮤지컬 컵들을 거실에 기념으로 모아왔다. 이번엔 내가 딸에게 그의 마음으로. — “너의 첫 뮤지컬 컵도 진열장에 놓자.”

로터리 좌석, 1층 오케스트라석 정중앙 자리

자리에 앉기 전 화장실은 필수인데, 음료를 사기 전에 다녀올 걸 그랬다. 우리가 들어가는 3층엔 화장실이 없어서 제일 위층인 4층까지 올라가야 했다.

공연 중 아이가 화장실 가고 싶다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의외로 밖으로 통하는 문이 종종 열려 아이들이 드나들었고, 인터미션 후에도 늦게 들어오는 사람이 꽤 있었다. 생각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로터리 좌석이라 비록 자리는 아무데나 좋아, 라는 마음이었다. 다만 너무 앞자리라면 아이에게 소리가 크지 않을까 걱정했다.

걱정이 무색하게, 우리 좌석은 1층 오케스트라석 완전 가운데, 무대와도 적당히 거리가 있는 X103, X104였다.

무대 시작 직전에 직원분이 단단한 파란 쿠션을 갖다 주셔서 아이의 의자에 깔아주었다. 사실 앞 좌석보다 높은 자리라 쿠션 없이도 잘 보일 것 같긴 했는데, 조금이라도 시야가 넓어질 수 있도록 쿠션 위에 앉혔다. 단점이 있다면, 등받이는 쓸 수 없어 오래 앉아 있기엔 다소 불편한 것 같았다.

우리는 20분쯤 무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불이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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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노래는 1막에 – Popular and Defying Gravity

1막은 아이가 완전히 빠져들었다. 무대가 시작되는 처음, 큰 음악 소리에 귀를 막았지만 이내 익숙해진 듯하다.

등원길에 자주 들려줬던 위키드 OST 덕분에 아는 노래가 나올 때마다 눈을 떼지 못했다. 아이는 중간중간 내용을 물어봤는데 나도 모르는 부분이 있어서, 다음엔 아빠에게 같이 오라고 해야겠다.

아이는 저녁을 간소하게 먹여서인지 가져온 땅콩과 초콜릿, 포도를 계속 먹었고, 그중 제일 좋아한 건 매점에서 산 크랜베리 주스였다.

딸이 가장 좋아한 노래는 Popular. 글린다와 엘파바가 머리를 넘기며 “토스토스(toss, toss)” 하는 장면에서는 깔깔 웃어댔다.

Defying Gravity가 열창되며 1막이 끝나자 아이는 2막도 보겠다고 했다. 20분의 인터미션 동안 아빠에게 영상통화로 재밌다고 자랑도 했다.

2막은 좀 힘들어했다. 이미 9시가 넘어 졸린 데다 신나는 노래도 없고, 무대도 1막만큼 화려하지 않았고, 스토리도 잘 파악되지 않는 듯했다. 2막 중반을 지나 나가고 싶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지만, 그래도 배우들이 나와서 인사하는 커튼콜은 보고 싶으니 끝까지 남아있기로 했다.

나도 남편과 연애하며 위키드를 봤는데 2막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 남편 말로는 그때 내가 잠들었다고 한다. 하하하.

커튼콜에서 사람들이 일어나 시야를 가리길래 아이를 안아 올려 무대를 보여줬다. 아이는 주위 사람들을 따라 연신 박수를 쳤다.

남편 덕에 편하게 집으로 귀가

우리가 2막을 보기로 결정하고 남편은 데리러 온다고 했다. 그리고 커튼콜이 시작될 무렵 51가에 서 있다고 문자가 왔다. 남편 차에 타자마자 긴장이 풀렸다. 버스를 타고 돌아갔으면 꽤 늦고 지쳤을 텐데, 남편이 데리러 와줘서 편하게 집에 올 수 있었다.

공연장을 나오니 네온사인을 켠 자전거 인력거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스피커에서는 Defying Gravity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운이 가시지 않아 저 노래를 들으며 뉴욕 거리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우리는 늦어서 그냥 지나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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