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회사 동료들과 함께한 점심 약속. 우리는 평일에 휴가를 내고 맨해튼으로 나가 ‘괜찮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MoMA를 둘러본 뒤 디저트까지 먹고 다시 뉴저지로 돌아와 아이 유치원 픽업 시간에 맞추는 일정을 계획했다.
맨해튼까지 운전할 자신은 없어서 우리는 NJ Transit 버스를 타기로 했다. 한 달 전부터 잡아둔 휴가였고, 레스토랑도 미리 예약해두었다. 예약할 때 보증금은 없었지만, 늦은 취소나 노쇼(No-show)의 경우 1인당 $35가 부과될 수 있다고 안내되어 있었다.
식당에는 예약 시간보다 딱 1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사실 처음에는 식당 위치를 정확히 몰라 MoMA 입구에서 물어봤다. MoMA에서 몇 걸음 더 걸어가니 바로 The Modern을 찾을 수 있었다.

12시 정각 예약 전까지는 Bar Room 테이블에 앉아 기다리라고 안내해주었고, 음료를 준비해줄지 물어봐주었다. 그리고 예약 시간이 되자 바로 안쪽 자리로 안내해주었다.
코스 식사를 하는 공간은 따로 마련되어 있었는데, 창밖으로는 바로 MoMA 정원이 보였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공사 중이라 뷰가 아주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맨해튼 한가운데에서 푸른 나무가 있는 MoMA 정원을 바라보며 식사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다른 시기에는 정원에 조각 작품들이 전시되기도 하니, 그때 오면 분위기가 더 좋을 것 같다.


코스 메뉴 고르기


점심은 세 가지 코스로 구성되어 있었다. 에피타이저, 메인, 디저트. 각 코스마다 네 가지 메뉴 중 하나를 고르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딱 네 명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모든 메뉴를 하나씩 주문해서 나눠 먹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맛있는 메뉴가 있으면 나중에 가족들과 다시 와서 먹어봐야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The Modern의 점심 코스 메뉴는 계절 재료에 따라 조금씩 바뀌는 듯했다. 다녀온 지 2주 정도 지나 다시 메뉴를 확인해보니 디저트는 그대로였지만, 에피타이저와 메인은 조금씩 바뀌어 있었다.
우리가 고르지 않은 메뉴는 딱 하나였다. White and Green Asparagus, Lentils, Spring Onion. 채소만 적혀 있어 아무래도 채식 메뉴에 가까워 보여서, 그 메뉴 대신 다른 메인 메뉴를 하나 더 주문했다.

Snap pea-hiramasa tartlet


가장 먼저 나온 것은 스냅피와 히라마사를 올린 작은 타르틀렛이었다. 코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딱 한입에 먹기 좋은 amuse-bouche 같은 메뉴였다.
테이블 가운데에는 이미 파란 접시가 세팅되어 있었고, 그 위에 세라믹으로 된 둥근 보울이 올려졌다. 그리고 그 위에 작은 타르틀렛이 놓여 나왔는데, 파란 접시와 세라믹 보울의 색 조합, 그리고 묵직한 느낌 덕분에 세팅부터 꽤 인상적이었다.
바삭한 타르트 껍질 위에는 아삭하게 씹히는 스냅피와 부드러운 히라마사가 올라가 있었다. 스냅피는 씹으면 입안에서 톡 터지는 듯한 식감이 있고, 히라마사는 방어와 비슷한 생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작은 한입 안에 바삭함, 아삭함, 부드러움이 함께 들어 있어 코스의 시작으로 꽤 재미있는 메뉴였다. 접시 위에 작은 그림처럼 맞춰 올린 듯한 세팅도 예뻐서, 눈과 입이 함께 즐거운 시작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생각보다 너무 짰다는 것. 식감은 기억에 남는데, 짠맛이 강해서 정작 어떤 맛이었는지는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빵과 물


스파클링 워터를 주문했는데, 유리병째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물병에 담긴 스파클링 워터를 잔에 따라주는 식이었다. 보통 스파클링 워터는 유료인 경우가 많아서 잔이 비워질 때마다 채워주니 나중에 얼마가 나오려나 살짝 불안했다. 그런데 병을 테이블에 두고 가는 것도 아니어서 무료인가 싶었고, 실제로 영수증에도 없었다.
식전빵도 마찬가지였다. 색이 진해서 처음에는 초콜릿 빵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곡물빵에 가까웠다. 갓 구운 빵은 손으로 찢었을 때 안쪽이 아주 따뜻했다.
나는 빵이 따뜻하게 나오면 일단 좋은 식당이라고 생각하는 나름의 기준이 있는데, 이곳은 그 기준을 충분히 만족했다. 적당히 짭조름하고 고소해서 우리는 빵을 한 개 더 부탁했다. 추가로 받은 빵도 영수증에는 따로 찍히지 않았다.
왠지 비싼 식당은 뭐든 추가 비용이 붙을 것 같은데, 이곳은 의외로 그런 부분에서 후한 느낌이었다.
에피타이저
개인적으로는 에피타이저를 맛보는 시간이 가장 재미있었다. 어떤 재료를 어떻게 조합했는지 보면서 먹는 재미가 있었다.
Eggs on eggs on eggs
추가로 $50을 더 내고 고를 수 있는 에피타이저였다. 이름은 정말 직관적이다. Eggs on Eggs on Eggs. 말 그대로 계란 안의 계란 안의 계란 같은 메뉴였다.
계란 모양의 그릇을 열면 안에 계란 노른자와 계란으로 만든 부드러운 소스가 들어 있었다. 여기에 고급 식재료인 캐비어가 함께 올라가 있었다.
같이 나온 바삭한 빵 위에 모든 재료를 얹어 먹으면, 고소하면서도 짭조름하고, 바삭하면서도 부드러운 여러 가지 식감과 맛이 한꺼번에 느껴진다.
추가 비용이 있는 메뉴라 살짝 고민되긴 했지만, 우리는 네 명이 나눠 먹었기 때문에 1인당 $12.50 정도라고 생각하니 충분히 먹어볼 만했다. 우리가 나눠 먹는 걸 알고 직원분이 센스 있게 빵 한 조각을 더 가져다준 것도 좋았다.
가족과 다시 온다면 이 메뉴는 추가 비용을 내고서라도 주문할 것 같다.



Chilled lobster, shiso and green radish
차갑게 나온 랍스터 에피타이저였다. 시소(일본 깻잎)와 초록 무가 함께 들어가 있어 전체적으로 산뜻한 느낌이었다.
랍스터는 부드럽고 깔끔했고, 무와 허브가 들어가서 무겁지 않았다. 진한 맛을 기대하기보다는, 코스 초반에 입맛을 가볍게 열어주는 메뉴에 가까웠다.

White bean cappelletti, morels, wild garlic
버섯과 마늘 향이 좋아서 맛있게 먹었던 파스타 메뉴였다. 에피타이저 중에서는 유일하게 따뜻하게 나온 메뉴였고, 그래서 더 기억에 남았다.
카펠레티 안에는 화이트빈이 들어 있었고, 모렐 버섯과 와일드 갈릭 향이 국물에 잘 배어 있었다. 이건 그냥 먹기보다 빵을 살짝 찍어 먹어도 잘 어울렸다.

Badger flame beets, avocado and sorrel
채소를 아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조금 낯선 메뉴였다. 특히 나는 비트를 정말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처음에는 살짝 망설였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한 입은 먹어봐야지.
의외로 비트와 아보카도의 조합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비트 특유의 흙내 같은 맛이 강하게 튀지 않았고, 아보카도의 부드러움과 잘 어우러졌다.

메인 메뉴
Heritage pork, trumpet mushrooms and red cabbage
처음 먹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베이컨 맛이었다. 두툼하게 자른 베이컨을 먹는 듯한 짭조름하고 훈연된 맛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먹어보면 생각보다 느끼하지 않고 깔끔했다. 고기는 부드러웠고, 트럼펫 버섯과 레드 캐비지가 함께 나와 전체적인 밸런스를 잡아주었다.


Aged duck, glazed cherries and hen of the woods
나는 오리를 자주 먹는 편은 아니지만, 이 메뉴는 고기 냄새가 전혀 나지 않고 깔끔했다. 오리 특유의 진한 맛은 있으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옆에 부어주는 소스에 찍어 먹고, 상큼한 체리를 함께 먹으면 조합이 아주 좋았다. 고기와 체리의 조합이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은 몰랐다.


Sea trout, clams, saffron, shellfish broth
연어와 비슷한 색을 띠는 생선 메뉴였다. 메뉴에는 Sea Trout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바다송어라고 한다.
생선 위에는 아주 작은 조개살이 올라가 있었고, 그 위로 사프란 소스와 갑각류 육수가 부어졌다. 우리는 채식 메뉴 대신 이 메뉴를 두 개 주문했는데,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다.
양은 확실히 작았다. 하지만 맛은 깔끔하고 섬세했다. 메인은 따뜻할 때 먹는 게 가장 좋기 때문에, 음식이 나오면 바로 먹는 걸 추천한다. 우리는 쌓인 수다를 떠느라 먹는 속도가 조금 느렸는데, 이런 메뉴는 따뜻할 때 먹어야 더 맛있다.

디저트
디저트는 예쁘고 맛있었다. 다만 나중에 남편과 다시 온다면 네 가지를 다 고를 수는 없고 두 가지만 골라야 할 텐데, 나는 유자 젤라토와 파인애플 아이스크림이 곁들여진 당근 디저트를 고를 것 같다.
고기를 먹고 난 뒤라 아무래도 상큼한 맛이 있는 디저트가 더 잘 어울렸다. 유자 젤라토는 가볍고 산뜻했고, 당근 디저트는 파인애플 아이스크림과 크림치즈 사바용이 함께 있어 익숙하면서도 깔끔하게 마무리된 느낌이었다.
초콜릿 크레뮤도 진하고 맛있었지만, 식사 끝에는 조금 더 상큼한 디저트가 끌렸다. Tête de Moine 치즈와 살구 조합은 디저트라기보다는 에피타이저나 와인과 함께 먹는 메뉴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다.




전체적으로 The Modern의 점심 코스는 음식 자체도 좋았지만, 평일에 휴가를 내고 친구들과 맨해튼에 나와 천천히 식사했다는 그 시간이 더 좋았다. 메뉴 하나하나를 나눠 먹고, 서로의 접시를 바꿔 맛보고, 어떤 메뉴가 제일 좋았는지 이야기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다음에 가족과 MoMA에 오게 된다면, 이 레스토랑도 좋은 선택지가 될 것 같다. 그때는 아이와 함께 다시 다녀온 The Modern 후기도 남겨봐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