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MA 5층에서 만난 마티스(Henri Matisse), 덜어내는 예술가, Dance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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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옆 갤러리에 마티스가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건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파란 그림. 크다. 그리고 단순하다. 처음엔 대충 그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파란 배경에 분홍 사람 다섯 명이 손 잡고 빙글빙글 도는 그림인데, 솔직히 말하면 왜 이게 명작인지 바로 와닿지 않았다.
예술에는 문외한 나는, 처음엔 파란색이 하늘이나 바다, 초록이 땅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안의 손을 잡고 원을 그리는 다섯명의 사람들을 보면, 지구 위에서의 평화를 상징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티스가 이 그림을 그린 건 1909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5년 전이었다. 1차 세계대전 직전. 유럽 전체가 불안하던 시기에 다섯 명이 손 잡고 빙글빙글 도는 그림을 그렸다는 것에 약간의 의미를 부여해본다. 

Dance (I), 1909

마티스가 이 그림을 그린 건 1909년이다. 당시 미술계는 인상주의 이후 새로운 방향을 찾고 있었다. 피카소가 아비뇽의 처녀들로 형태를 해체하던 바로 그 시기, 마티스는 반대 방향으로 갔다. 더 단순하게, 더 본질적으로.

파란색, 초록색, 분홍색. 딱 세 가지 색만 썼다. 인물의 얼굴도 없고, 근육도 없고, 옷도 없다. 배경도 없다. 그냥 하늘이고 땅이고 사람이다. 이 단순함이 처음엔 대충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게 마티스가 수백 번 고쳐서 도달한 결론이었다. 불필요한 것을 전부 덜어내고 남은 것만 그린 거다.

왼쪽 아래 두 사람의 손이 살짝 떨어져 있다. 원이 끊어질 것 같은 긴장감. 이 작은 디테일 하나가 그림 전체에 에너지를 만든다. 

Dance II (1909–10)

Dance (I) 바로 다음에 그린 작품으로 Dance (II)가 있는데, 이 작품은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있다. Dance (I)이 사실 (II)를 그리기 전 러시아 수집가에게 보여준 컬러 스터디였다고 한다.

Dance II는 그냥 춤 그림이 아니었다. 마티스가 말한 “인류의 황금시대”를 주제로 한 작품으로, 인물들은 실제 사람이 아니라 상징적인 이미지다. 빨간 인물은 내면의 열기, 인간. 파란 배경은 우주와 하늘. 초록 언덕은 대지. 이 세 가지가 하나로 합쳐지는 게 Dance의 핵심이었다. (참고: art-matisse.com)

두상 조각 시리즈 : Jeannette

Dance 옆 갤러리에는 마티스의 두상 조각 시리즈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같은 모델 Jeannette의 얼굴을 1910년부터 1916년까지 6년에 걸쳐 다섯 번 반복해서 만든 시리즈다. 첫 번째는 그나마 사람 얼굴이다. 두 번째, 세 번째로 갈수록 형태가 뭉개지고 과장된다. 다섯 번째쯤 되면 거의 추상이다. Dance (I)와 같은 방향 — 점점 덜어내는 것.

The Moroccans (1915–16)

조각 뒤로 걸려있는 검정 배경의 그림이 The Moroccans (1915–16)이다. Dance (I)를 그린 지 6년 후 작품인데,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마티스가 모로코 여행에서 받은 기억을 담은 그림으로, 모스크와 기도하는 사람들, 수박이 검정 바탕 위에 추상적으로 표현돼 있다. Dance (I)가 원색의 에너지라면, The Moroccans는 어둡고 조용하다. 같은 화가가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다른 분위기다.

이 갤러리에서 두 그림을 나란히 보면 마티스가 단순히 “밝고 화려한 색채의 화가”가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Dance의 파랑과 The Moroccans의 검정, 둘 다 마티스의 방식으로 본질만 남긴 그림이었다.

Composition, 1915 — 창문 하나

조각상 사진의 오른쪽에 걸린 작품은 Composition (1915). 얼핏 보면 색 덩어리 세 개다. 민트 그린, 주황, 파랑. 근데 이게 창문을 그린 거다. 민트 그린이 방 안, 큰 주황 덩어리가 창문 너머 빛이나 건물, 파란 부분이 하늘. 왼쪽 빨간 줄무늬는 커튼.

마티스가 창문을 자주 그렸다는데, 이유가 있다. 창문은 실내와 실외, 안전한 일상과 미지의 바깥을 동시에 담는 경계다. 마티스한테 창문은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두 세계 사이를 상징하는 모티프였다. Dance (I)의 다섯 명이 파란 하늘 아래 손을 잡고 있는 것처럼, 여기서도 마티스는 색 덩어리만으로 그 경계를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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