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dy

스페인 역사ㅣ2. 로마이전 유산

1) 첫 천년의 식민지화

Sorothaptic [소로텝틱]인

기원전 1000년 이전과 기원전 800-700년 사이에 발트해 및 북유럽 언어와 유사한 언어를 사용하는 인도 유럽계 남녀가 이베리아 반도에 들어와 Mesata(*이베리아 반도 중앙부에 있는 대고원)에 정착했다. 그들은 소로탑토 (*스페인어 : Sorotaptos)였으며, 언필드 문화(*Urnfield culture, 후기 청동기시대의 온대의 유럽일대의 주요문화)의 인도유럽인이라고 불린다. 유목민 출신으로, 그들의 주요경제활동은 가축사육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은 작은 고지대 마을에 정착하여 농업을 하였다. 씨족은 가족단위보다 우위에 있었고, 이는 부족으로 조직되었다. 철은 사용하지 않았다. 

페니키아인

기원전 8-7세기 동안 페니키아인들은 이베리아 반도의 지중해 연안을 점령했다. 티레시 (현재 레바논)에서 시작되어 시칠리아, 카르타고 또는 모로코와 같은 다른 식민지에서 온 그들은 지중해로 남서쪽 접근과 대서양과의 통신 경로를 통제했다. 그들은 또한 농업과 가축사육을 했지만 그들의 활동은 가디르(카디스)를 비롯한 알메리아 및 말라가와 같은 식민지에서의 금속채취 (금, 은, 주석)에 중점을 두었다. 그들은 또한 상부 안달루시아와 교역하였으며, 카딸루냐 및 이비자에서 그들의 존재 증거가 발견되었다.  

켈트족

켈트족은 기원전 8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이베리아 반도에 들어온 인도유립계 민족이다. 그들은 기원전 4세기부터 철을 도입했다.  

그들은 주로 오늘날의 갈리시아에서 주로 정착하였으며, 그들은 견고하게 밀폐되어있는 원형의 지역인 Castro(*선 로마시대의 마을 터)에 거주하였다. 그들은 농업과 가축사육에 종사하였으며, 화폐는 몰랐으나, 금과 주석을 무역에 사용하였다. 그들은 화장을 시행했다. 또한, 그들은 큰 성벽으로 둘러싸인 마을이 두드러지는 반도 내부에 정착했다. 

그들의 주요 경제활동은 농업과 가축사육이었지만 매우 기초적인 섬유제품도 개발하였다. 그들은 화장을 하였는데, 이에 따라, 까딸루냐 (Agullana, Alt Empordà)에서는 camps d’úrnes(*영어: Urnfield, 스페인어 : Campos de urnas – 청동기 시대의 화장한 뼈를 담은 항아리를 묻은 묘지)뿐만 아니라 청동 및 철기구가 발견되었다. Toros de Guisando (Àvila)를 제외하고 중요한 문화적 기여는 잘 알려져있지 않다. 

그들은 결국 다른 토착집단과 융합되거나, 다른 경우에는 Numancia와 같은 대도시를 건설하기도 했다. 

(아프리카의 고대도시의) 카르타고인 (*스페인어 : cartaginés)

북아프리카에서 온 카르타고인들은 기원전 550년부터 페니키아인들을 몰아냈는데, 특히 이베리아 반도의 동쪽 해안과 이비자지역이었다. 사르데냐, 코르시카 및 시칠리아에 있는 그들의 식민시(植民市)는 그리스인 (기원전 535년) 과 로마인들과 충돌이 있었고 기원전 3세기부터 포에니전쟁이 있었다.

카르타고인들은 로마인들과 에브로조약(기원전 226년)으로 체결하였으며, 이 조약으로 두 세력의 영향 영역이 한정되었다. 그러나 이후에 그들은 알프스를 넘어 북쪽에서 로마를 공격했다.

까딸루냐는 포에니의 식민지배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지 않았다. 반면에 이비자는 직물과 염장에 대한 상업활동이 크게 발전하였다.

포에니전쟁(*영어 : Punic Wars, 스페인어 : Guerras Púnicas)

2) 그리스의 존재

기원과 전도

기원전 8세기부터 그리스인들은 인구증가와함께 제품판매를 위한 새로운 시장을 찾는데 관심을 갖고 이주하여 다른 식민지를 건설했다. 흑해에서 시작된 이 식민지화는 후에 지중해로 퍼졌다. 

이베리아 반도의 최초 그리스인 정착지는 l’Alt Empordà의 Rhode (Roses, *Girona)이었으며, 기원전 767년부터 시작되었다.  

이 정착민들은 포체아섬에서 왔으며, 이전에 Massàlia (Marsella, 마르세유, 프랑스) 식민지를 건설했다. 그 후, 기원전 6세기 초에 그들은 Empòrion(*까딸란: Empúries, 스페인어: Ampurias, 스페인 까딸루냐 지중해 연안에 있는 고대도시, 지금의 Girona) 의 Palaiàpolis (구시가지)에 건축했다. 기원전 600년경 그리스인들은 Mainake (Malaga 근처)와  Hemeroskopèion(*영문: Hēmeroskopeion, An ancient greek city)을 건설하였다. 이는 Júcar강과 Cartagena 사이의 식민지로, Dénia(*스페인어: Dénia, Alicante지역),  Xàbia(*스페인어: Jávea, Alicante지역) 또는 el penyal d’Ifac(*Alicante지역, 바다에서 나오는 거대한 석회암 노두이며 바위파편으로 해안과 연결되어있음)이 해당될 수 있다. 

반도에서 최초의 그리스인의 식민화는 기원전 8세기와 7세기 사이에 페니키아인들과 거의 동시대에 이루어졌다. (고대) 그리스의 식민화는 토착민에 대한 존중에서 페니키아 및 카르타고와 달랐다. 식민화의 주된 이유 중 하나는 Tartessos(*고대 이베리아 반도 남부에 있었던 동명의 반전설적인 항구 도시를 중심으로 존재하던 문명. 기원전 1100년경 이베리아 반도의 토착 문화와 페니키아 문화가 융합되어 형성된 것으로 추정.)의 광물에 대한 관심이었다. 

Empúries의 작은 식민지는 Massalia와 Mainake 항구에 정박하는 선박의 참조지점이 되는 전략적 위치 덕분에 가장 중요한 시장 중 하나가 될 때까지 성장했다. 이러한 번영은 매우 활발한 곡물 무역과 자체통화인 은 드라크마의 주조로 나타났다. 

그리스 유산

그리스 문화의 영향은 오늘날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예는 다음과 같다 : 

  • 언어학. 고대 그리스어에서 파생된 많은 단어를 포함하는 까딸란 언어는 예를 들어 다음과 같다 : 정치, 민주주의, 군주제, 폭정, 모기지, 아몬드 그리고 수많은 질병의 이름.
  • 예술. 극장은 그리스의 유산이다. 그리스 예술은 우리 문화의 한 획을 그었는데, 르네상스 조각작품과 신고전주의 건축은 고전그리스 예술에서 영감을 받았다.
  • 도시계획. 역사상 최초의 도시 계획가였던 그리스의 히포다무스(Hippodamus of Miletus)는 오늘날 많은 도시에 존재하는 거리의 직각배치를 계획했다.
  • 식문화. 그리스인들은 포도나무, 올리브, 무화과와 같은 우리 식단의 기본이 되는 일련의 제품(꿀, 치즈, 식용유 및 포도주)을 도입했다.
  • 정치. 그리스인들은 사회를 조직하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 그들의 민주주의는 사회의 대다수를 정치참여에서 배제했지만, 이는 의사결정이 참여방식으로 이루어지고 권력이 통제된다는 것을 수반한다.
  • 스포츠. 스포츠 및 놀이분야에서 많이 남아있다. 예를 들어, 기원전 776년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올림피아 도시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올림픽이 있다.
  • 학문. 과학의 발전 및 그리스철학은 인류의 물질적 도덕적 진보의 기초가 되었다.

3) 원주민

타르테소스

타르테소스가 최초의 반도 국가를 구성했다고 말하는 연구가 있다. 아마도 그들은 아르가드 남부 문화의 연결이 되었을 것이다. 

고고학적 출처가 없는 상황에서 성서와 고전은 Guadalquivir 계곡에 위치한 기원전 7세기와 6세기 사이에 군주국의 출현을 나타낸다. 그들의 경제기초는 농업 및 가축사육과 함께 야금이었다. 

타르테소스 사회는 정치권력에 연결된 소수가 부를 축적하는 큰 사회적 계층으로 조직되었다. 

타르테소스 문화는 아마도 이베리아인에게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으며, 카르타고인의 도래와 함께 명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반도 동쪽의 이베리아인들

이베리아 문화에서 두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 첫 번째 순간은 기원전 5세기와 3세기 사이에 이베리아인들이 독립적인 부족이었을때, 두 번째는 기원전 3세기부터 1세기까지 부족이 로마의 정치적 통제하에 있었던 때이다. 

이베리아인들은 방어를 용이하게 하기위해 언덕에 위치한 작은 요새화 마을로 조직되었다. 이는 Ullastret (el Baix Empordá) 또는 Puig Castellar(Santa Coloma de Gramenet (el Barcelonès))의 경우이다. 그들은 아마도 왕에의해 통치되는 다른 부족으로 구성되어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까딸루냐의 현 구역과 대략적으로 일치하는 영향력 있는 영토를 가졌다. 예를 들어, Cossetanis는 현재 Tarragona의 시골지역에, Ausetanis는 Osona에, llergetes는 Depressió Central에, Indigetes는 Empordà에, laietanis는 Barcelonès 및 Maresme 등에 거주했다.

그들의 문화적 특징면에서,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 및 28개의 기호가 있는 반음절 유형의 글쓰기를 강조한다. 해당 기호는 오늘날 읽을 수는 있지만 아직 해석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금속 무역을 크게 발전시켰고 그들의 경제는 그리스식 주화로 화폐기반을 갖췄다. 

이베리아 예술

이베리아인들은 페니키아인, 그리스인, 로마인과 공존했지만 매우 풍부한 예술로 두각을 나타냈다. 가장 특징적인 창작물 중 일부는 무덤, 의인화된 봉헌물, 청동이나 돌로된 신의 조각품, 도자기 물체 및 고급 장신구이다. 

이베리아식 건출물에 대해서는, Baza 근처의 Basti 또는 Galera (Gradana) 변두리 Tùtigi의 묘지 장례식 건물이 알려져있다.  

종교는 이베리아 예술의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신들은 조각품과 그림 또는 귀금속으로 표현되었다. 일반적으로 다산이나 장례 숭배와 관련된 여신인 여성은 1987년 Alcúdia d’Elx에서 발견된 여성의 흉상인 Dama d’Elx (*1897년 스페인 Elche에서 남쪽으로 2km 떨어진 사유지의 고고학 유적지인 La Alcudia에서 발견된 석회암 흉상입니다. 현재 마드리드의 스페인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와 같은 중요한 창작물에 속한다. 

또한, 사자나 곰과 같은 동물 형상도 빈번하게 무덤위에 올려져 수호자 역할을 했다. 종종 동양의 영향을 받아 환상적인 동물을 숭배했다. 하나의 예로서 인간의 머리와 황소의 몸을 가진 인물인 Bicha de Balazote가 있다.

* Dama d’Elx
스페인어 : Dama de Elche
영어 : Lady of Elx or Lady of Elche

4) Empúries(스페인 카탈로니아의 지중해 연안에있는 고대 도시)

토착민

Empùries 근처에 사는 이베리아인들은 그곳에 정착한 그리스인들과 정기적으로 상업 및 문화 관계를 유지했다. 예를들어, Ullastret (el Baix Empordà)에 사는 인디게트인들이 그 경우이다. 사실, 그들은 성문에서 모든 종류의 상품을 교환하였고 그들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평화로웠다. 그리스인과의 접촉은 더 불안정한 환경에서 살았던 원주민에게 놀라운 발전을 가져왔다. 그리스 작가 Estrabó (*Strabo, 스트라본 : 고대 그리스의 지리학자, 역사가, 철학자이며, 프톨레마이오스와 함께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뛰어난 지리학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부패되어 보존된 pixum-이것으로 그들과 그들의 아내가 이를 닦는다-으로 씻은 것이 청결과 배려로 산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관습과 땅에서 자는 관습은 이베리아인과 켈트족 사이의 공통점이다.> 

그리스인

Empòrion는 일반적으로 해안에 있는 정착촌이었으며, 이는 상업관계 촉진을 위함이었다. 대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거주하였다.

처음에는 방어를 위해 Fluvià 와 Ter 강 입구사이 해안 바로 앞의 작은 섬에 Palaiàpolis d’Empùries가 세워졌다. 수세기동안 이 섬은 퇴적물에 의해 해안과 연결되었다. 후에, 원주민과의 관계가 원활하고 스스로 방어할 필요가 없어졌기때문에 포키아인들은 해안에 나폴리라는 새로운 정착지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Empúries는 Massàlia (Marsella)에 의존했지만, 발전하면서 자체 은화 (엠포리아 드라크마)를 만들어 교역 강국이 되었다. 

로마인

기원전 218년에 스키피오 장군이 지휘하는 로마군이 Empúries에 상륙하였다. 후방통로를 차단하고 카르타고인이나 포에니족 군의 보급을 막기위함이었다. 카르타고의 한니발 바르카 장군이 지휘하는 군은 알프스를 넘어서 북쪽에서 로마를 공격하려했다. (제 2차 포에니 전쟁 : *제2차 포에니 전쟁 또는 한니발 전쟁은 기원전 218년부터 기원전 202년까지 로마 공화정과 카르타고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전쟁) 그러나 영토내부의 다른 이베리아인들은 그들의 정복을 피하기위해 저항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인들은 오랫동안 그리스인과 토착민과 함께 생활하였다. 

그들은 3세기까지 고유한 삶을 살았던 Neàpolis d’Empúries 옆에 도시를 건설했다. 로마인의 도래는 그리스인에게 자치권의 상실을 의미했지만 두 민족 사이의 공존은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다. 실제로, Cato the Elder(*기원전 203년 재무관이 되어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휘하에서 재무관을 지냈고, 그 후 기원전 202년에 귀국. 그 후 대 카토는 기원전 195년 집정관이 되어서 히스파니아에 파견됨)의 로마 인구를 Empúries로 옮기는 정책이 수행됨으로 인해, 그리스 식민지는 기원전 195년부터 로마화되었다. 

이 도시는 기원전 1세기부터 약 200년동안 Empordà의 농업 식민지화와 동시에 찬란한 시대를 살았다.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이 지역의 이베리아 주민들과 그리스인들은 로마 시민권을 얻도록 했다. 그리하여 Emporiae (거주민들의 다양한 기원과 그들 사이의 공존을 나타내는 복수 명사)이 탄생했다. Empúries는 3세기 말에 위기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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